제주도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공항을 나서는 순간 예고 없이 덥쳐 오는 후덥지근한 남국의 공기,
새파란 하늘과 따가운 햇살, 눈이 시리게 보석처럼 반짝이는 초록 바다.
우연히 올려다 본 밤 하늘에 숨막히게 흩 뿌려진 굽이치는 별의 물결.
그런데, 이 영화 <낙원의 밤>에서 제주도 풍경은 좀 이상해요.
내내 비가 오고 흐리거나, 맑은 날인데도 푸르스름한 막을 통해 보는 듯합니다.
마치 해가 뜨기 전 아주 이른 새벽이나, 해가 진 후의 짙은 어둠 직전 같습니다.
어느 쪽일까요?
사랑하는 이를 잃어본 사람은 아마도 알 겁니다.
가슴 한 곳이 너무 아프다는 재연, 초점 잃은 공허한 눈을 한 태구의 마음을.
상실의 고통과 사무치는 그리움, 부조리한 세상 속 무력감과 울컥 올라오는 향할 곳 없는 분노.
소중한 것을 모두 잃은 이에게,
낙원은 더 이상 반짝이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푸르스름한 회색의 밤 언저리입니다.
혼자 남겨진 괴로움에 녹색 소주병을 여럿 비워도 고통스러운 밤은 끝날 줄을 모르네요.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계속되는 푸르스름한 밤의 시간을 어떻게든 허위 허위 버텨내야만 합니다.
이 곳은 낙원도 지옥도 아닌 연옥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낱같은 삶에 대한, 서로에 대한 미련을 이어주는 존재로 붉은 물회가 있습니다.
새콤 달콤 시원 비릿한 물회를 입안 가득 채우며 비로소 아직 살아 있음을 실감합니다.
아직 누군가와 나눌 무엇이 내게 있음을 깨닫습니다.
한편, 이 부조리한 푸르스름한 회색빛 밤의 세상에서 흰 옷 입은 마이사(차승원)는 차라리 구원입니다.
약속은 지켜지고, 빚은 이자까지 포함되어 '계산'되라라는 믿음은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걸 수 있게 하는 희망입니다.
절대적인 폭력의 상징으로, 정당한 고통의 원칙에서 자신조차 자유롭지 않은,
웃기게 화나있는 순백의
살벌한
구원자라니!
그 순백의 구원 희망은 붉은 피의 세례로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터져 솟구치는 뜨거운 붉은 피는 방금 까지 살아 있었던 것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부조리한 세상은 피의 구원으로 인과의 섭리를 되찾고,
푸르스름한 회색빛
낙원의 밤은 새벽을 지나 끝을 맞이합니다.
공기는 따뜻함을, 바다는 눈부심을 되찾고,
이제... 편안합니다.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
- 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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