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축복’을 바란다. 자신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 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하나님이 내게 주실 축복만을 간구한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심는 자에게만 준다”는 점을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성경 속 어느 곳에서도 “일단 내가 복을 줄 테니 후에 내게 돌려달라”는 말씀은 없다.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하늘 창고에 모아둔 것도 없이 먼저 달라고 졸라댄다.
미국뉴욕초대교회 박종규장로(JC 메가월드 대표)는 하늘에 심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드리는 것도 없이 달라고 졸라대지 않는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는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가장 많은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다.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께 가장 많이 드리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하나님을 알게 된 후 그가 하나님께 구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미국, 기회의 땅에서 꿈을 이루다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가난’이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먹을 것조차 없는 환경에서 그는 배움을 포기했다. 세상과 맞닥뜨린 그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가난을 떨쳐 내는 것이었다.
1984년. 스물여덟 살의 젊은 가장은 가족을 남겨둔 채 미국으로 향했다. 차가운 베이글 한 개가 하루 식사의 전부였다. 생선가게와 야채가게를 오가며 청소와 잡일로 돈을 모았다. 일주일에 7일을 일했다. 3년 동안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었다. 기회의 땅 미국은 열심히 노력한 이방의 청년에게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3년 후 개인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헤어져 있던 가족들을 미국으로 부르고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 하나님이 그를 향해 손을 내미셨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모를 뿐이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착해야 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던 제가 처음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디 처음부터 잘 믿는 사람 있겠습니까. 저도 하나님 모르게 십일조 떼어 먹는 어리석은 성도 중 하나였죠.”
한국에 있을 당시 교회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던 그였다. 한인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마지못해 교회에 다녔다. 그러던 어느해 1월 신년성회 강사로 참석하신 한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기도제목을 적어 내라고 부탁했다.
당시 집사였던 박종규장로는 “뉴욕 초대교회에서 가장 십일조를 많이 드리는 성도가 되게 해달라”고 적어냈다.
기도제목을 읽던 목사님이 박장로를 불러 일으켜 세웠다.
“집사님, 십일조 하십니까?”
“아니요. 감사헌금만 하고 있습니다.”
청중들의 웃음이 터졌다. 십일조도 안 하는 성도가 십일조를 가장 많이 내게 해달라고 기도하다니 정말 웃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어 목사님은 주 단위 수입을 물었다. 박장로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러자 목사님은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난 3년의 시간을 곱하고 이자를 더해 한국 돈으로 8천만 원을 헌금하라고 했다. 그동안 떼어먹은 십일조였다. 8천만 원이면 뉴욕 맨하탄에 매장을 얻을 수 있었다.
“참 통 큰 목사님이죠. 그 때 성도들이 수근거렸어요. 저 사람 이제 교회에 안 나오겠다고. 그런데 저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대뜸 10월에 곗돈 타면 모두 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하나님은 제게 말라기 3장 10절 말씀을 보여주셨어요.”
박종규장로의 십일조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10월 곗돈을 타서 밀린 십일조를 헌금하고 지금까지 십일조에 한 치의 오차도 내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날 이후 박장로는 기도대로 뉴욕초대교회에서 가장 많이 십일조를 낸다는 점이다.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니더군요. 십일조를 정확히 드리자 하나님은 말씀대로 제게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먼저 섬기는 마음,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고 계셨어요.”
지금 박장로는 교회 재정의 1/10을 감당케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듯 목사님을 섬기다
그가 다니던 뉴욕초대교회에도 한차례 분열의 바람이 일었다. 350여명의 성도에서 2백명이 교회를 떠났다. 당시 목회자에게 불만을 품었던 성도는 박장로에게 분열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박장로는 담임목사의 곁에 남았다. 하나님은 두렵고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그였다. 교회를 가르고 목회자를 배신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성도가 급격히 줄어 80명까지 떨어졌지만 하나님은 뉴욕초대교회를 버리지 않으셨다. 분열되어 나간 교회가 개척 후 6개월만에 사라졌고 오히려 뉴욕초대교회는 8백여 성도로 성장, 한인교회 중 손꼽히는 규모가 되었다.
박종규장로는 교회를 부흥시키려면 담임목사를 떠받들라고 충고한다. 목회자가 마음껏 목회할 수 있도록 섬기고 근심 없도록 외적인 부분을 도우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박장로의 목회자 섬김은 충실하다. 새벽이건 밤이건 부름이 있으면 달려 나간다. 자녀교육에 근심이 없도록 자녀 교육비를 교회 예산에 편성하고 담임목사의 직권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을 5%로 정했다. 근심이 없어진 담임목사의 설교에는 힘이 실려 있었고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충만해 있었다. 섬김을 받는 목사가 성도를 섬긴다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아니요”를 모르는 ‘바보 장로’
“성도들이 저를 바보라고 부른답니다.” ‘바보장로’. 왜 이런 별명이 붙었을까.
“성도들이 저에게 목사님께 전해달라며 말을 전해요. 그중에는 상처가 되는 말도 있고 기쁨이 되는 말도 있었죠. 그러나 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듣기만합니다. 성도들의 모든 이야기는 제 귀에서 끝나요. 목사님에게도 다른 성도에게도 다시 전해지는 법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서운해 하던 성도들이 이제는 웃으며 넘어갑니다. 네라는 대답밖에 할 줄 모르니 ‘바보’가 아니겠어요.”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20년 가까이 그는 단 한번도 예배시간을 어긴적이 없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1시간을 걸어서 교회에 갔고 사업차 골프를 치다가도 수요예배 시간이 다가오면 곧장 교회로 달려갔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은 믿음의 원칙 때문이다.
‘먼저 심고, 먼저 드리고, 주의 종을 섬기고, 약속을 지키는 삶’. 이것이 박종규장로의 믿음이다. 하지만 하나 빠진 것이 있다. ‘베풂’. 그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사랑과 베풂이 없으면 모두 소용없다고 말한다.
베풂을 강조한 그에게는 어떤 비전이 있을까. 박장로는 평생 선교 일선에서 헌신한 선교사를 위해 한국에 안식관을 세우는 일을 첫 번째 비전을 꼽았다. 그리고 가난으로 배움의 길을 가지 못하는 불우 청소년들을 돕는 것도 당연히 그의 몫이다.
이미 수양딸로 키운 두 딸이 있었고 두 아이는 모두 성균관대에 입학했다. 이 아이들 외에도 10명이 박장로의 후원을 받는다. 또 다른 소망은 ‘교회’를 통해서 이룬다. 재정의 10%를 책임지고 싶다는 박장로는 뉴욕초대교회가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를 조용히 섬길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교회와 목회자를 세우는 것이 바로 그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건강식품 회사인 JC메가월드를 창업하고 사세를 확장한 박장로는 올해 4월 ‘JC메가라이프’라는 이름으로 한국본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지난 8일 명성교회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JC'라는 회사 이름은 ‘JESUS CHRIST'에서 따왔다. 영육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있는 이름이다.
또 지난 18일에는 천안백석대학교회에서 열린 예장합동정통 정기총회에서 공로패도 받았다. 모두 그가 섬김을 실천한 덕이다.
항상 웃음으로 대답하고 섬김으로 실천하는 사람 박종규장로. 이민사회에서의 성공도 그를 교만하게 만들지 못했다. 하나님이 그에게 하늘을 문을 열고 축복을 부어주시는 까닭은 꾀부릴 줄 모르고 잘난 척하지 않는 ‘촌스럽고 순박한 그의 믿음’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굿뉴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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